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르나도테 왕조 (문단 편집) == 신흥 왕가 == 스웨덴 왕가가 된 것이 [[나폴레옹 전쟁]] 무렵이며 그 전에는 [[프랑스 왕국|프랑스]]의 평민 집안이었다. 왕가의 시조였던 칼 14세부터가 프랑스 남서부의 평범한 [[법률가]][* 당시 프랑스에서 법률가는 신흥 계급 정도의 취급은 받았으나 그 이상의 취급을 받기는 힘들었다.]의 아들로 태어난, 프랑스 기준으로도 정말 별볼일 없던 집안이었다. 기존의 스웨덴 왕가였던 [[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]]는 스웨덴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계속 계승권을 주장했으나 시간이 흘러 남계후손은 끊겼고 여계후손만 남은 상태에서 1881년 계승권 1위였던 [[바덴의 빅토리아]]가 [[구스타프 5세]]와 결혼하면서 구세대 스웨덴 왕조와 신세대 스웨덴 왕조의 결합으로 상징되었다. 게다가 빅토리아는 구 왕실의 마지막 후계자였기 때문에 그 이후의 왕들은 이전의 스웨덴 왕가 혈통도 계승하게 되면서 스웨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실히 인증받았다.[* 칼 14세의 왕비인 [[데지레 클라리]]도 프랑스 평민 출신이었으므로 [[오스카르 1세]]까지는 프랑스 혈통이었다.] 베르나도테 왕가는 스웨덴의 예전 왕조인 [[바사 왕조]]의 문장을 계승했다. 사실 [[나폴레옹]]은 전성기에 유럽 각지에 자신의 부하, 친척들을 왕으로 꽂아넣었는데 이렇게 분봉된 왕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후대까지 지속된 왕조이다.[* 다만 칼 14세는 마냥 나폴레옹이 옹립한 것만은 아니고 스웨덴 측에서 나폴레옹에게 잘 보이고자 먼저 들이려는 의사를 보인 것도 있다.] 정작 칼 14세 요한은 스웨덴 귀족들의 반 나폴레옹 움직임에 동조하여, 결국 자기를 임명한 나폴레옹을 퇴위시키는데 일조했다. 그러나 워낙 뜬금없이 갑툭튀한 [[왕실]]이었던 관계로 초기에는 [[귀천상혼|기존 왕실과는 통혼하지 못하고]]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출세한 다른 신흥가문끼리 혼인을 맺었다. 이런 배경으로 인해 1980년까진 [[귀천상혼]] 및 [[살리카법]]을 둘 다 매우 엄격하게 지켰다. 결과적으로 19세기 말 ~ 20세기 초까지 오면서 혈통상 왕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다. [[스웨덴-노르웨이|노르웨이 왕위도 겸했으나]] 1905년에 [[노르웨이]]가 독립했기 때문에 [[동군연합]]이 끝나 현재는 스웨덴 왕위만 가지게 되었다. 대신 타협책으로 베르나도테 왕조의 [[칼 15세]]의 외손자이자 [[덴마크]]의 왕자였던 [[호콘 7세]]를 국왕으로 추대했다. 이때 [[프리드쇼프 난센]]이 [[오스카르 2세]]를 설득하는데 크게 공헌했다. 현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와 왕비 사이에는 1남 2녀가 있는데, 이전에는 장자 상속이되 여자보다 남자를 우선했지만 1980년 세계 최초로 절대적 맏이 상속법을 도입해 지금은 남녀구분없이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다. 칼 16세 구스타프 본인은 외아들 칼 필립 왕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지만, 의회의 입법으로 [[빅토리아 왕세녀|빅토리아 공주]]가 왕세녀로 책봉됐다. 현 국왕이 사망하거나 퇴위하면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빅토리아 왕세녀가 스웨덴 역사상 4번째 여왕[* 이전에는 [[마르그레테 1세|마르가레타 발데마르스도테르]], [[크리스티나 여왕|크리스티나]], [[울리카 엘레오노라]]가 있었다.]이 된다. 빅토리아 왕세녀는 8년간의 열애 끝에 왕실로부터 결혼을 허락받아 2010년 6월 19일에 약혼자 다니엘 웨스틀링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. [[부마]]가 된 다니엘에게는 다니엘 대공, 베스테르예틀란드 공작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. 2012년 2월 말에는 빅토리아 왕세녀와 다니엘 대공의 장녀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[[에스텔 실비아 에바 메리|에스텔 공주]]가 태어났고, 2016년 3월에는 서열 3위 [[오스카르 칼 올로프|오스카르 왕자]]가 태어났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